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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뉴스

중국 인도 국경분쟁 이유 - 국경 수비대 충돌 군사적 대응

by ☆B ☆ 2020.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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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도 국경분쟁 이유 - 국경 수비대 충돌 군사적 대응

 

히말라야 산 인근 중국-인도 국경에서 양국 군대가 충돌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인도군은 15일 오후 국경에 인접한 인도 라다크 지역 갈완 계곡에서 ‘폭력적인 대치(violent face-off)’가 일어나 양측에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16일 밝혔습니다.  

 

인도군 사망자는 3명으로 최초 발표됐지만, 이후 인도군은 고지대에서 영하의 기온에 노출된 중상자 17명이 추가로 숨졌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아직 실종 상태인 군인들이 더 있는 만큼, 사상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입니다. 중국 측은 정확한 사상자 수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가디언은 15일 저녁 무렵 갈완 계곡 인근 산등성이에서 마주친 인도 순찰대와 중국군 사이에서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인도 당국 관계자는 가디언에 “인도군 지휘관이 떠밀려 강 협곡 아래로 떨어졌고, 이로 인해 증원군이 소집됐습니다. 양군 600여명의 병력이 돌과 쇠막대를 들고 밤늦게까지 대치했으며 몇몇 병사들이 사망했습니다. 총이 발사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확전(擴戰)을 막기 위해 보통 양측 군대는 국경 인근에서 총기를 소지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도군은 “현재 양측 군 고위간부들이 사태 해소를 위해 회담하고 있다”면서 “(이번 충돌은) 영토를 보존하고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양국은 서로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인도 외무부는 “중국 측이 갈완 계곡 내에서 ‘실제 통제선(LOC)’을 존중한다는 합의를 어겼다”며 “현재 상태를 변화시키려는 중국 측의 일방적인 시도의 결과로 폭력적인 대치가 일어났다.

 

중국 측이 고위급 합의를 준수했다면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고 비난했습니다.
 

 

 

반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인도군이 양국 간 합의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경계선을 두 차례 침범해 중국인을 도발하고 공격해 양국 간 심각한 물리적 갈등을 일으켰다”고 밝혔습니다.

 

중국과 인도 사이의 무력 충돌이 일어난 건 1975년 이후 45년만의 일 입니다.

 

양국은 국경을 맞댄 20세기 이래 히말라야 인근의 무인지대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수십 년간 분쟁을 벌여왔습니다.

 

중국은 히말라야 동쪽 9만㎢와 서쪽 3만8000㎢ 면적이 중국 소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갈등은 지난 4월 말, 중국이 중-인 국경지대인 LOC 방면으로 수천 명의 병력과 포병대 등을 배치하며 다시 고조됐습니다.

 

인도가 접경 지역에서 도로와 활주로, 기반 시설을 새로 건설하기 시작하자 이를 견제하려 한 셈 입니다.

 

인도군이 중국 측에 즉시 해당 지역에서 벗어날 것을 경고했지만 중국군은 이를 무시했고, 양측 간에는 크고 작은 몸싸움과 투석전(投石戰) 등이 계속됐습니다. 
 

 

 

 

 

 

 

 

 

 

 

 

 

 

 

 

지난 6일 양측 군대는 고위 지휘관 회담을 열어 교전 중지를 합의했지만 중국군은 갈완 계곡 등지에서 군대를 물리지 않았습니다.

 

9일 인도 북부 시킴에서는 국경 순찰대 150여명이 격렬하게 충돌해 인도군 4명과 중국군 7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인도군 3명이 15일 중국과의 국경 분쟁지인 라다크 지역에서 중국군과 격투를 벌이다가 사망했다고 NDTV 등 인도 언론과 외신이 16일 보도했습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15일 충돌이 발생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45년 만에 처음이라고 홍콩 영자지 SCMP는 전했습니다.

 

두 나라는 신생국이었던 1950년대 초만 하더라도 관계가 우호적이었습니다.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와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총리가 뉴델리와 베이징을 교대로 방문할 정도였습니다. 인도는 중국 공산정부를 다른 나라보다 앞서 인정했고 티베트 합병도 사실상 묵인했습니다.

 

 

 

 

 

 

 

 

 

 

 

 

 

 

 

 

하지만 1956년 중국이 티베트와 신장을 연결하기 위해 악사이친을 통과하는 도로를 건설하면서 양국 관계에는 금이 갔습니다.

 

카슈미르와 라다크 동쪽에 자리 잡은 악사이친은 인도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이었습니다.

 

티베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1959년 인도로 피신한 점도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무력 충돌이 발생했고 중국과 인도는 1962년 라다크 지역 등에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인도는 한달가량 이어진 전쟁에서 치욕적으로 패했습니다. 인도에서는 3천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4천명이 포로로 잡혔던 반면 중국 측은 사상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중국은 악사이친을 완전히 손에 넣었고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습니다.

 

양측은 전쟁 후 정확한 국경을 획정하지 못했고 실질통제선(LAC)을 설정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국경 충돌이 발생한 곳도 악사이친 서쪽이자 라다크 동쪽의 LAC 인근 갈완 계곡이었습니다.

 

양국은 1967년에도 네팔과 부탄 사이에 있는 인도 시킴주에서 충돌했습니다. 인도는 당시 충돌로 80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중국 측에서도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1975년에는 인도군 4명이 동북부 아루나찰프라데시에서 중국군의 매복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 이번 사태까지 양국 사이에서는 45년간 사망자가 발생한 유혈 충돌은 없었습니다. 인도 육군은 이번 라다크 국경 충돌로 20명의 자국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습니다.

 

 

양측은 그간 확전을 피하기 위해 총기를 동원하지 않고 맨손 격투나 투석 등으로 맞섰는데 이번엔 워낙 충돌이 격렬해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습니다.

 

이같은 두 나라 간의 주요 국경분쟁은 1914년 인도 심라에서 획정된 '맥마흔 라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맥마흔 라인은 서쪽 부탄에서 동쪽 브라마푸트라 강까지 890㎞ 구간을 말합니다. 맥마흔 라인에 따라 티베트 남부 지역은 영국령 인도 영토가 됐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1949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심라 협정이 영국의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불평등 조약'이라며 파기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티베트 남쪽 아루나찰프라데시 9만㎢를 '짱난'(남티베트)이라고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 이곳을 실효 지배한 인도 측과 대립해왔습니다.

 

중국은 아루나찰프라데시 외에 히말라야 도카라(중국명 둥랑, 부탄명 도클람) 지역에도 도로와 헬기 이착륙장을 건설하고 대포 등 군사시설을 증강 배치해 인도가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양국 군은 중국, 인도, 부탄 국경선이 만나는 이 도카라 지역에서 2017년 73일간 대치하며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도 겪었습니다. 두 나라는 서쪽 카슈미르부터 북동쪽 구석에 자리 잡은 아루나찰프라데시까지 3천500㎞에 달하는 국경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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